풍경이 있는 여행

포향 영일만 호미곶

최우보(솔향기) 2013. 5. 27. 07:34

일시 : 2013.05.19(일요일)

 

호미곶(장기곶)은 경상북도 포항시 장기반도 끝, 영일만을 이루면서 돌출한 곳으로, 먼저 북구두호동 주변에 위치한 환호해맞이공원 주변 해안가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영일만을 구경하였다. 건너편에 펼쳐진 POSKO의 장관 참 대단했다.

 

영일만을 낀 해안가를 달려 호미곶으로 이동했는데 번잡하지 않고 덜 발달된 지역이라 시골 어촌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호미곶해맞이광장의 바다와 육지에 손이 하나씩 있는데 이를 '상생의 손'이라 부른다.

웅장한 새천년 기념관이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고,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이 깃든 기념탑이 자리하고 있다.

                  

 

 

 

 

 

 

지도에서 보 듯 대단한 영일만과 긴 해안선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포항제철(포스코)의 거대함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포항의 대표적 상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듯 하다.

 

 

 

 

 

 

 

 

사진의 우측으로 쭉 연결된 해안선 끝이 호랑이의 꼬리부분인 호미곶이 나온다.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졌다.

 

 

 

 

       동외곶(冬外串장기곶(長鬐串)이라고도 한다. 원래 생김새가 말갈기와 같다 하여 장기곶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8년 이후에는 장기갑(長鬐岬)으로 불리다가 1995년 장기곶(長鬐串)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다 200112호랑이 꼬리라는 뜻의 호미곶(虎尾串)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꾸었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이곳을 꼬리에 해당한다고 묘사하였다.

 

 

                

 

우리나라 최대의 가마솥

 

 

 

새천년을 맞아 밝힌 불이 영원히 밝히고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 기념상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157) 동해변에 연오랑·세오녀 부부가 살았다.

       하루는 연오가 바닷가에서 해조(海藻)를 따고 있던 중 갑자기 바위가 연오를 싣고 일본 땅으로 건너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남편 연오가 돌아오지 않자 찾아나섰다가 남편이 벗어 둔 신을 보고 그 바위에 오르니 바위가 또 세오를

      일본으로 실어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놀라 이 사실을 왕께 아뢰니 부부가 서로 만나 세오를 귀비로 삼았다.

 

      이 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일월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버려 괴변이

      생겼다고 하였다. 이에 국왕은 사자를 일본에 보내어 이들 부부를 찾게 되었다.

 

      연오는 그들의 이동이 하늘의 시킴임을 말하고 세오가 짠 세초(細綃)로 하늘에 제사하면 다시 일월이 밝아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사자가 가지고 돌아온 그 비단을 모셔 놓고 제사를 드렸더니 해와 달이 옛날같이 다시

      밝아졌다. 비단을 창고에 모셔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였으며,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하였다.

 

 

 

 

호랑이상

 

 

 

 

아쉬운 점은 흔하디 흔한 괭이갈메기가 휴식을 취하러 갔는지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영해기준점을 표시해 놨다.

 

 

 

 

 

 

 

 

동해바다의 명물 대왕문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