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의 요람 청도 운문사 방문기(2013. 8.17)
비구니의 요람 운문사를 찾았다.
사리암 방문 후 학소대 계곡 트레킹 계획이 무산되어 예부터 자주 방문했었던 운문사에 들러
대웅보전에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경내를 둘러보았다.
대웅보전 뒤편에 마련된 야생화 단지에서 벌개미취·갈퀴망종화를 확실히 볼 수도 있어 좋았다.
또한 두 개가 존재하는 대웅보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되었다.
♥ 복호산 중턱에서 본 운문사 전경
운문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虎踞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560년(진흥왕 21) 한 신승(神僧)이 대작갑사(大鵲岬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591년(진평왕 13) 원광(圓光)이 크게 중건하였다.
원광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지어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가슬갑사(嘉瑟岬寺)에서 귀산(貴山) 등에게 주었다고
전한다.
937년(태조 20)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중창하고
작갑사(鵲岬寺)라 하였으며, 이 때 왕이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쌀 50석을 하사하고
‘운문선사(雲門禪寺)’라고 사액한 뒤부터 운문사라고 불렀다.
호거산 운문사
일주문격인 범종루가 있는 입구에 호거산 운문사라 편액(현판)되어 있는데 호거산은 도대체 어느 산을
이름 하는지 궁금하다. (호거산은 호랑이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운문산 옆 범봉과 904m 그 일대를 호거산이라 부르거나 멀리는 억산까지도 호거산으로 부르고
일부스님들은 절의 남쪽에 있는 산들 모두를 호거산으로 부른다고 한단다.
그리고 호거대(등선바위) 그 일대를 호거산으로 보거나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은 복호산·지룡산을
호거산으로 보고 있어 도무지 명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청도에서는 가지산 운문산 그 일대를 통틀어 운문산이라 부르는 걸 감안한다면
운문산과 억산일대가 호거산일수도 있고 또 운문사 주차장에서 보면 웅크린 듯 한 호랑이 모습을 한
복호산이 호거산일 것 같다는 생각과 신라시대 원광법사가 중국 호구산(37m)에서 수도하며 지내다가
운문사에 왔을 때 중국의 호구산이란 이름을 따온 것으로도 보인다.
나는 나름대로 추측해본다. 어디든 건물의 뒤쪽 산 이름을 따서 붙이는 게 다반사이기에
운문사 대웅보전의 북쪽(뒤쪽)에 위치한 복호산과 지룡산을 호거산으로 지칭하였다고.
복호산과 지룡산이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라고 스님들이 생각한다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주차장에서 운문사로 들어가는데 처음으로 반기는 느티나무이다.
운문사 담벼락옆으로 심어져 있는 무늬둥굴레 오랜 가믐으로 생기가 없어 방문객들도 함께 힘없게 한다.
처진소나무의 위용
만세루
만세루는 학승들의 교육을 위한 강당이다.
법회나 법당의 주요 행사 때 사용하는 곳으로 부처의 설법이 만세를 누린다는 뜻이다.
운문사 대웅보전
운문사에는 대웅보전이 두개가 존재한다.
1994년에 새로 축한 건물이 만세루 앞의 대웅보전이다.
운문사에서는 대웅보전을 신축하면서 옛 대웅보전의 현판을 비로전으로 바꿔 달았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마침내 비로전으로 바로 잡은 것이다.
현판을 바꾼 것은 또한 한 절에 본전이 두 개 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화재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옛 대웅보전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것이 문제였다.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지만 비로자나불의 제작 연대가 대웅보전보다 앞선다는 증거가 없으니
이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로전 현판이 떼어지고, 다시 대웅보전 현판이 걸렸다.
한 절에 대웅보전이 두 개가 돼버린 연유가 이러하다.
복호산 전경 - 암벽 아래에 북대암이 자리하고 있다.
♥ 운문천의 맑은 물이 마음도 맑게 한다.
♥ 속세를 떠나는 다리인 듯
♥ 오백전
♥ 구 대웅보전
♥ 말매미가 우렁차게 울어댄다.
♥ 만세루의 전경
♥ 불이문
♥ 무쇠솥이 정겹게 보인다.
♥ 관음전
원응국사비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탑비로
높이 2.3m. 보물 제316호. 현재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상실되었고,
3조각으로 절단된 비신만이 복원되어 있다.
비의 주인공인 원응국사는 일찍 출가하여, 1085년(선종 2) 송나라에 가서 화엄의 뜻을 전하고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워 귀국하였다. 1106년(예종 1) 중대사(重大師), 1109년 선사(禪師)가 되었고,
1144년(인종 22) 운문사에서 93세로 입적하였다.
♥ 운문사 매표소 주변의 소나무숲 - 언제 봐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