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구경과 코스모스의 가을 풍경 맛을 만끽하다.
일시 : 2023.09.19(화요일)
날씨 : 맑음(구름 많음)
지루한 가을장마가 멈춰 여름휴가를 이용해 딸내미들과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를 구경하기로 하고 먼저 가을 맛을 느끼기 위해 분황사를 찾았다. 양 옆에 백일홍 단지와 코스모스 단지가 조성돼 있는데 마침 양쪽 모두 만개해 올 들어 처음으로 가을 맛을 보게 되었다. 먼저 분황사로 들어가 유명한 국보 모전석탑을 구경하기로 한다.
참고로 주차장은 넓으며 무료이다. 그리고 입장료 역시 없다.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분황사 터에 세워진 신라 시대의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모전석탑은 전탑의 형식을 모방하여 만든 탑으로, 벽돌을 쌓아 만드는 전탑과는 달리 모전석탑은 화강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렸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634년(선덕여왕 3)에 분황사 창건과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동경잡기(東京雜記)》 등의 기록에 따르면 건립 초기에는 9층으로 제작되었으나, 현재는 3층만이 남아있다. 지금의 모습은 1915년 일본인들에 의해서 수리 복원된 것으로, 수리 당시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등의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 지식백과 발췌-
주차장 한쪽에 원효성지 분황사임을 알리는 빗돌이 마련되어 있다.
분황사지 모전석탑을 보러 입구로 들어간다. 좌측은 예전에 매표소가 자리했는데, 지금은 안내소로 새단장 되어 있다.
분황사에 관한 아내판을 읽어본다. 분황사(芬皇寺)는 634년(선덕여왕 3)에 창건된 사찰로,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의 대표 사찰 중 하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의 승려 자장대사(慈藏大師)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이곳에 머무르며 후학을 양성하였다고 하며, 신라를 대표하는 화가 솔거의 《관음보살도(觀音菩薩圖)》가 봉안된 곳이기도 했다고 한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를 제외한 다른 건축물이 남아있지 않지만, 경주 분황사지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 년 2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단다.
원효대사와 관련한 안내판도 있다. 「원효가 다녀간, 그 길 위에 서다」 원효대사 구도의 길도 소개되어 있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현존하는 신라의 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초기 신라 석탑의 발달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러한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분황사 모전석탑의 구성과 양식에 관한 내용을 옮겨 본다.
「높이는 9.3m이며,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을 쌓아 만들어진 기단 위에 벽돌 모양의 화강암을 쌓아 탑신부를 만들었다. 기단의 네 모퉁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자상이 한 마리씩 배치되어 있다.
탑신부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 탑신의 각 면에는 감실(龕室)로 통하는 문을 만들고 문의 좌우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인왕상(仁王像)을 각각 1쌍씩 조각하였다. 옥개석(지붕돌)의 낙수면과 옥개받침에는 계단 모양의 층이 이루고 있다. 3층의 옥개석은 사모지붕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꼭대기에는 화강암으로 연꽃 장식이 놓여 있다.」
분황사 석정 - 통일신라시대에 설치된 우물로, 조선시대에 와서 불교 억압정책에 따라 사찰 내의 모든 돌부처의 목을 잘라 이 우물에 넣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돌우물 중 가장 크고 우수한 것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고 한다.
바위틈 사이로 솟아오르거나 흘러내리는 물이 잘 고이도록 바위를 움푹하게 판 뒤, 그 위에 다시 돌을 쌓아 시설해 놓은 모습으로 겉면은 8각을 이루고, 안쪽의 벽은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 원효대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삭의 받침돌이라고 한다.
약사여래입상은 경주 분황사 보광전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으로 모든 중생의 질병을 구제해 준다는 의미의 약사여래불이다.
보광전 입구에서 본 석정과 모전석탑이다.
분황사 종무소 앞 그러니까 사찰 바깥쪽이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이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울타리 안쪽은 발굴작업이나 다른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모양이다.
분황사지 한쪽에 예전 분황사와 관련 있었던 돌들을 모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분황사 부속 건물 입구에 꽃무릇(석산)이 절정을 지나고 있다.
대원심 보살 사리탑과 석불입상 – 분황사 보광전 뒤편에 있는 석조물로 조선후기에 수행정진 하다가 열반에 든 원심보살이라는 분의 사리탑으로 외형은 전형적인 일본식 석등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을 보면 치아에서 백옥(부처님 모양)의 사리가 나와 온 세상이 경탄하여 그 불도 정성을 기리고자 이 사리탑에 봉안 분황사에 모셨다고 한다.
대종각에서 한 번씩 종 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가까이 가서 기둥을 보니 이해가 된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타종을 허락한다는데 1인1탁으로 보시수입 전부를 어려운 이웃에 사용된단다.
분황사 앞 넓디넓은 평지가 있는데, 바로 황령사지란다. 황령사지 내에는 공사가 한창 이뤄지고 있는 모양이다. 덤프트럭이 많이 들락거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분황사와 황룡사지 사이 넓은 공간에 코스모스 단지가 조성되어 꽃들이 만개해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 준다.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가 코스모스 단지 한 켠에 위치해 있다. 여기까지 분황사 터였음을 알 수 있다. 당간지주라 함은
당(幢: 불화를 그린 기)을 걸던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 좌·우에 세우는 기둥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들 알 것이다.
광활한 코스모스단지에 들어서니 속세를 벗어난 기분을 느낀다. 요즘도 낮은 예년기온 보다 많이 높아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가을임을 실감한다. 한 계절을 훌쩍 뛰어 넘은 그런 느낌이다. 자세히 보면 코스모스군락 속에 백일홍도 많이 섞여있다.
이제는 백일홍 단지로 이동하였다. 코스모스단지의 반대편으로 주차장을 통과해 도착했다. 코스모스단지보다는 협소하지만 단색의 군락들이 따로 구분되어 있어 혼란스러움이 없어 보기에 눈이 편하다.
호랑나비가 열심히 꿀을 빨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분황사와 모전석탑 그리고 코스모스단지와 백일홍단지까지 구경을 하고 이곳 관광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