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민속마을
일시 : 2010.08.02
2010년 8월 1일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위치한 양동민속마을이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휴가를 맞아 진수를 데리고 이곳의 모습을 함께 구경했다. 계곡이나 해수욕장에서의 피서도 좋지만 문화 답사도 상당히 좋다고 본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 전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마을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의의는
두 마을은 유교적, 풍수적 전통을 근간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생활양식으로 세계 유산적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며 지금까지 제례의식 등 무형의 유산을 통해 역사적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 점, 두 마을이 통합적으로 보존관리 되고 있는 점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단다.
양동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전형적인 양반마을로서 현재 150여호의 대소고가가 보존돼 있으며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됐고, 15~16세기경 월성손씨와 여강이씨가문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으며, 현재 국보1, 보물4, 중요민속자료12, 유형문화재2, 기념물1, 민속자료1, 향토문화재2, 등 총 23점의 지정문화재가 있단다.
향단
보물 제412호. 지정(등록)일 1964.11.14.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135.
낮은 구릉 위에 자리 잡고 있는 향단은 조선 중기 건물로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인 이언적(1491∼1553) 선생이 경상감사로 재직할 때 지은 것이다.
일반 상류주택과 다른 특이한 평면 구성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풍수지리에 의해 몸체는 月자형으로 하고, 여기에 一자형 행랑채와 칸막이를 둠으로써 用자형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랑채, 안채, 사랑채가 모두 한 몸체로 이루어지며 각각의 마당 즉, 2개의 마당을 가진 특색 있는 구성을 하고 있다.
2개의 마당 중 하나는 안마당으로 쓰이고 다른 하나는 행랑마당으로 쓰인다. 행랑채는 앞면 9칸·옆면 1칸으로 되어 있고
행랑채 뒤편에 있는 본채는 행랑채와 똑같은 규모의 집채를 앞·뒤에 2채 배치해 놓았다. 그 중앙과 좌우 양쪽 끝을 각각 이어서 방으로 연결하였으므로, 마치 전체 건물을 日자형의 한 건물 같이 배치하였다.
이 건물은 마을 전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위치와 모습뿐만 아니라 상류주택의 일반적 격식에서 과감히 벗어난 형식으로, 주생활의 합리화를 도모한 우수한 공간구성을 보이고 있다.(경주시청 자료)
▲ 정충비각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16호
이 비각은 조선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때 순절한 낙선당 손중로(1598~1636)와 충실한 노비 억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정도 7년(1783년)에 임금의 명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강학당은 서원의 양대 기능 중 하나인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장대석의 높은 기단을 쌓아 그 위에 자연석을 다듬은 초석을 놓았으며, 규모는 정면4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로서 웅장하면서도 고색이 잘 간직되어 있으며, 사방 둘레에 너비 1m정도의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툇마루 가장자리는 높이 6.5㎝, 높이 8.5㎝의 턱을 두었고, 기단 네 모서리에 추녀를 받는 활주를 설치하였다.
심수정
양동심수정(良洞心水亭.중요민속자료 제81호.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135 )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동족마을로, 넓은 안강평야에 오랜 전통을 지닌 여러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 정자는 여강이씨 문중에서 세운 것으로 조선 명종 15년(1560)경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지금 있는 정자는 철종 때에 행랑채를 빼고
화재로 모두 타 버려 1917년 원래 모습을 살려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 구성은 크게 따로 담장을 둘러 세운 정자와 담장 밖에 있는
행랑채로 구분된다. 정자는 ㄱ자형 평면을 가지고 있으며 ㄱ자로 꺾이는 부분에 대청을 마련하였다. 대청 양 옆으로는
각각 방을 두었고, 왼쪽 방에는 누마루를 만들었다. 난간을 설치한 누마루에서 향단(보물 제412호)이 있는 북촌일대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어 더 없는 운치를 느낄 수 있다. 행랑채 역시 ㄱ자형 평면을 지닌 건물로 방, 마루, 방, 부엌,
광 순서로 1칸씩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로 특히 여름에 아랫마을에서 올려다 보는
경관이 웅장하며, 옛 품격을 잘 간직하고 있는 행랑채를 비롯해 건물을 다듬은
기술이 뛰어나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강학당
강학당의 정면은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서원입구에서 바로 강학당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남쪽 기단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내부 대청의 북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 이란 편액이 높이 걸려있다. 정면 4칸 중 좌측 3칸은 마루이며, 우측 1칸에는 방을 2개 설치하였고, 기단3면(정면, 우측, 좌측)에 계단을 설치하였으며, 굴뚝은 마루 밑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처리하였다. 기둥 윗몸에서 앙서 하나를 내어 기둥위에 놓인 주두와 결구시킨 초익공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구는 오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치고, 종보 위에 파련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100년의 역사가 지난 양동초등학교의 전경 - 경주답게 기와지붕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