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여행

해인사 관광

최우보(솔향기) 2010. 9. 26. 14:56

일시 : 2010.09.23

 

추석 명절을 맞아 가족모두 고향 영산에 가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 오랜만에 가족모두 합천 해인사 관광에 나섰다. 몇 년 전 민경이는 빠지고 다녀왔지만 모두 함께 관광은 처음이다. 연휴가 길어서 인지 아침엔 도로가 밀리지를 않아 편안히 해인사에 도착했다. 천년고찰답게 볼수록 웅대하고 장엄함을 느낀다. 찬찬히 그리고 즐겁게 하나하나 구경하였다. 어제는 얄궂은 비가 왔지만 오늘은 완연한 가을 날씨이다. 청명한 날씨에 기온도 가을로 돌아왔다.

 

 

 

법보종찰가야산해인사

 

법보종찰 해인사는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대 사찰로 꼽힌다. 해인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민족의 믿음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로서 한국인의 정신적인 귀의처요, 이땅을 비추는 wlgO의 등불이 되어 있다.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그 도도한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 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에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 경전의 최고봉으로서, 그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 경전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 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곹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海)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이렇게 여실如實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디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법손인 순응順應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화상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에, 곧, 서기 802년 10월16일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적광전에 자리에 창건하였다. 이리하여 화엄종은 개화기를 맞던 신라시대를 거쳐, 해인사를 중심으로, 희랑希朗대사를 위시하여 균여均如, 의천義天과 같은 빼어난 학승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른다.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성지이며 또한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국내 최대 사찰로서 명산인 가야산 자락에 위치하여, 가야산을 뒤로하고 매화산을 앞에 두고 있어 그 웅장한 모습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경의로울 뿐 아니라 송림과 산사가 어울어져 연출하는 설경을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경에 젖게 한다.

 

 

 

 

 

 

 

 

       해인사 성보박물관뒤로 보이는 가야산 정상부의 장엄한 모습

 

 

 

 

 보존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의 모습

 

 

 

 

일주문 - 절의 어귀에 있는 제일문으로서 절의 위용을 한눈에 느끼게 해 주는 일주문은 곧, 모든 중생이 성

불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의 첫 관문을 상징하니 초발심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해인사의 일주문은

 홍하문이라고도 하며, 그 소박한 아름다움과 주위 경치와의 어우러짐이

               일품인 까닭에 일주문 가운데에서도 가장 이

              름이 나 있습니다.

 

 

 

 

 

 

 

 

 

 

 

 

 

        김영환 장군 팔만대장경 수호공적비

 

 

 

 

       길상탑

 

 

 

 

 

 

 

 

고사목 -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 (서기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

자 왕이 이 은덕에 감사하여 두 스님이 수행하던 자리에 해인사를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떼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느티나무는 1,200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

  장하여 오다가 1945년에 수령을 다해 소사하고 지금은 동체만 남아 해인사의 장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석등과 정중삼층석탑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곳

 

 

 

 

  학사대 전나무(경남기념물 제215호) - 학사대는 신라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857~?)이

              가야산에 은거하여 사서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

              다고 한다. 당시 거꾸로 꽂아 두었다고 전해지는 전나무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아래로 처져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보존되어 있는 부처님 사리

 

 

 

 

       음수대 - 옛과 지금의 많이 변화된 모습

 

 

 

 

 

 

 

 

 

 

 

 

        해인사 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