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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풍경

선암사의 겨울 풍경 - 부산 진구 부암동(2016.02.14)

부산진구 부암3628번지에 위치한 도심속의 아늑한 천년고찰 백양산 선암사를 둘러본다.

백양산둘레길 신라대학교에서 어린이대공원 코스를 걷는 중 들러 부처님도 알현하고...

 

신라 문무왕 15(675)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선암사는 처음 건강사였는데, 뒷산 절벽 바위에서 신라의 국선

화랑도들이 수련하였다하여 선암사로 부르게 되었단다.

 

선암사 홈페이지에 전각들에 대한 설명이 아주 상세히 되어 있어 이곳에 옮겨 싣는다.

 

 

 

 

대웅전 - 대웅전은 거룩한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란 뜻이다. 자연히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불상이 봉안의 주 대상이

            된다. 한편으로는 사바세계의 교주이신 석가모니 부처님 외에 여러 불보살들이 함께 모셔지기도 하는데 그 모시는

 

            상징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석가모니불의 좌우에 염화시중의 미소로 대변되는 가섭과 다문제일의 제자인 아난이 각각 선법과 교법을 상징하며

           봉안된다.

 

           둘째, 부처님의 반야지(般若智)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왼쪽에서, 수행과 행원이 원대함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오른쪽에

           서 모시고 모든 구도자들이 지혜와 행원에 의지하여 해탈의 길로 나가야함을 보여준다.

 

           셋째, 과거의 연등불인 제화갈라보살, 현세의 석가모니부처님, 미래의 미륵보살이 봉안되어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를 통하

           여 시간을 달리하면서 교화함을 나타낸다.

 

           넷째, 석가모니부처님의 좌우에 조상의 극락왕생과 내생의 행복이 직결되는 아미타불과 고통받는 병자나 가난한 사람을

           구원하는 자비의 약사여래를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대웅전의 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문수보살 대신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또는 대세지보살의 협시보살로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남의 잘못은 보기 쉽지만

                     자기 자신의 잘못을 보기는 어렵다.

 

                     남의 잘못은 쌀 속의 돌처럼 골라내고

                     자기 자신의 잘못은

                     저 노름꾼이 화투짝을 속이듯 감춰버린다.

 

                                                                                - 법구경 -

 

 

 

 

                       

 

                      

 

 

 

 

 

 

 

용왕단 - 사찰에서 용왕 또는 용신을 모셔 둔 사당을 말한다. 사찰에서 용은 주로 법당 안팎에 조각이나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데,

          더러는 별도로 단을 두고 상()을 만들어 모시기도 한다. 해안이나 섬에 있는 사찰에는 그러한 예가 흔하다. 용은

          고대 인도의 사신(蛇神) 신앙에서 발생한 것으로, 불교에 수용된 뒤에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신으로 자리 잡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불법이 가 나라로 전파되면서 점차 형상이 바뀐 점이다. 특히 발톱의 수가 그렇다. 인도의 용은

          발톱이 6, 중국은 5우리나라는 4, 일본은 3개이다.

                      

           용은 불교 이외에 민간신앙에도 자리 잡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때 용왕에게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며,

        이때 용왕단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나라에서 용왕도량을 열기도 한 고려시대에는 용왕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왕도량은 3~7일 동안 열리는데, 궁전이나 사찰 또는 선상에서 운우경(雲雨經)을 독송하였다고 한다.

 

          사찰에서 불경을 보관하는 건물을 해장각(海藏閣) 또는 해장보각(海藏寶閣)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용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불법을 믿지 않을 때가 오면 용왕이 세상의 모든 불경을 용궁에 모아 놓고 지킨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칠성각 - 중앙에 치성광여래(치성광여래)를 두고 좌우에 일광보살(일광보살)과 월광보살(월광보살), 그리고 상단 좌우에 칠 여래,

            하단 좌우에 칠원성군이 배치되어 있다. 칠성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제 1()은 자손에게 만덕(만덕)을 주고,

           제 2()은 인간의 장애와 재난을 없애주며,

           제 3()은 업장을 소멸시켜주고,

           제 4()은 구하는 모든 것을 모두 얻게 하며,

           제 5()은 일백 가지 장애를 없애주고,

           제 6()은 복덕을 두루 갖추게 하며,

           제 7()은 수명을 오래도록 연장시켜 준다.

 

           사찰의 전각을 그 중요도에 따라 상단·중단·하단으로 나눌 때 하단에 속하는 전각이다.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을 모신다. 칠성신은 옛날부터 우리나라 민간에서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의 수명을 늘려주며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주는 신으로 믿어왔다. 이 칠성신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처음에는 사찰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았다

           가 점차 본래의 기능을 되찾아 별도의 전각인 칠성각에 모셔지게 되었다. 정면 1~2, 측면 1칸으로 대부분 규모가 작지

           만, 삼성각이라고 해서 칠성신을 산신·독성과 함께 모실 때는 칠성만을 모시는 전각보다 크게 짓기도 한다.

 

           남극노인성 등 하늘의 천체와 관련있는 신들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전각의 명칭칠성(칠성)은 구체적으로는 탐랑·거문·

           녹존·문곡·염정·무곡·파군의 일곱 별로, 각각 부처로 바뀌어 칠 여래가 되는데. 예를 들면 제칠파군성군약사유리광여래는

           칠성 중 파군이 여래로 바뀐 것이다.

 

 

 

 

 

       독성(獨星)과 함께 모시는 경우도 흔하다. 본래 산신은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 많이 듣던

         토착신이다.

         특히 산지가 70%나 되는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산신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이 산신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호법신중(護法神衆)의 세계로 들어와 신중탱화의 중단 내지 하단에 자리 잡다가 나중에는 그 기능이 강화되어

          단독으로 모셔진다. 그 중에서 산신은 한국 민족 신앙의 주요 대상으로서 우리의 생활공간으로 바짝 다가왔던 토속 신앙

          이다. 불교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므로 산신도 비교적 일찍 불교에 수용되었을 것을 여겨지나, 산신각

          이 세워진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이다. 대개 전각의 뒤쪽에 세우며, 크기는 정면1, 측면 1칸이 보통이다. 산신각 내에는

          산신을 그린 탱화를 모시는데 대개 흰 수염, 대머리,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손에는 하얀 깃털부채나

          파초선·불로초 등을 들고 있고 주로 봉래산·영주산·방장산 등의 삼신산을 배경으로 한다.

 

          한라산이나 속리산·계룡산·지리산 등지의 사찰에는 드물게 여자 산신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여자 산신은 트레머리에

          댕기를 두르고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다. 호랑이에 걸터앉거나 기대고 있는 모습이며, 손에는 대개 불로초를 들고 있다.

        이 밖에 북건(福巾)이나 유건(儒巾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지팡이를 든 유교적 산신도 있고, 삭발한 스님이 묘법연화경

         같은 불경을 들고 있는 불교식 산신도 흔하다. 이 경우 의상은 가사와 비슷하나 적.녹색이 주류를 이룬다.

 

 

 

 

 

 

 

 

 

 선암사3층석탑 - 선암사 극락전 옆 마당에 세워져 있는 이 석탑은 3매의 옥개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규모가 작은 석탑이다.

                    석탑 부재의 크기 및 형태와 전각 체감율을 고려할 때 1, 2, 3층의 동일한 삼층석탑 옥개석으로 판단된다.

                    1층 옥개석은 지면과 맞닿은 아랫부분이 흙속에 많이 파묻혀 있지만 옥개받침이 4단이며, 낙수면과 옥개받침

                       등의 치석이 대체로 좋은 편이다. 이 석탑은 조각수법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 특히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사전 - 선종 사찰에서 그 종파를 연 조사(祖師)를 봉안한 곳이다. 조사당이라고도 한다. 조사전이 없는 절에서는 영각(影閣)

 

            짓고, 국사를 배출한 절에서는 대신 국사전(國師殿)을 짓기도 한다. 고려시대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가 국사전을 짓고

            16국사의 영정을 모시는 것이 그 예이다. 영각을 지은 사찰은 그곳에 이름 있는 선사의 영정을 모시고 제의를 받는다.

 

           교종이 소의경전에 근거를 두고 있는 데 반하여 선종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심법에 의지하는 바 크다. 때문에 법을

           전하는 스승이나 전해 받는 제자나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으로 깨달음의 정도와 경계를 증명하고 인증

           받아 법을 전한다. 이른 인가(印可)라 한다.

           후일에 의발(衣鉢)을 전하는 제도나 인가의 제한이 사라졌지만, 처음에는 한 제자에게만 인가를 하고 그 징표로서 의발을

           전하였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생긴 것이 일종일파(一宗一派) 사자상전(師資相殿)의 기풍이며, 이 때문에 문종 스승에 대한

           공덕이 깍듯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조사에 대한 존숭을 더하여 부도(浮屠)를 세우고 탑비를 건립하는 외에 사찰

           경내에 따로 전각을 지어 영정을 봉안하고 제의를 받들었다. 이렇게 조사를 존숭하기 위한 전각이 바로 조사전이다.

 

           조사전은 사찰 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살림집에서의 가묘(家廟)나 유교 서원의 후묘선학(後廟先學) 배치법

           을 따른 것이다. 이는 조령(祖靈)과 생령(生靈)이 한자리에 모여 살고 있음을 표방한 것이며, 후인들이 선인이 가던 길을

           따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건축 구조상으로는 한국 사찰에서 보이는 층단식 가람배치에서 가장 깊은 곳은 가장 높은 곳이며, 아래로부터 올라오던

           동선이 우주공간으로 승화하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락전 - 서방 극락세계에 살면서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다.

 

             아미타불은 한 나라의 임금의 지위와 부귀를 버리고 출가한 법장비구로서, 여래의 덕을 칭송하고 보살이 닦는 온갖 행을

             닦아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을 세웠으며 마침내 아미타불이 되었다. 아미타불은 그 광명이 끝이 없어 백 천억 국토를 비추

             고, 그 수명이 한량이 없어 백 천 억겁으로 셀 수 없다하여 극락전을 무량수전(무량수전)이라고 하며, 주불의 이름을 따라

             미타전(미타전)이라고도 한다. 극락보전·무량수전·무량전·보광명전(보광명전아미타전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극락정토

             신앙이 강하여 내부 구조는 대웅전만큼이나 화려하다.

 

 

 

 

 

 

 

 

 

관음전 -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법당으로,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인 경우에는 원통전(圓通殿)이라고 한다.

 

         원통전이란 명칭은 관세음보살이 모든 곳에 두루 원융통(圓融通)을 갖추고 중생의 고뇌를 소멸해 주기 때문에 그 권능과

            구제의 측면을 강조하여 원통전이라 한 것이다. 반면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부불전의 성격을 띨 경우에는 관음전이

            라 한다.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 즉 중앙의 아미타불과 좌우의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모신다.

           관음전 안에는 관음상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양류(煬柳)관음·십일면(十一面)관음·해수(海水)관음·백의(白衣)관음

           등을 모신 곳도 있다. 그리고 후불탱화(後佛)로는 주로 아미타불화로 모신다. 중국에서는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강조하여 대비전(大悲殿)이라는 현판을 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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