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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 전시

창녕 / 영산향교 & 유다리

일시 : 2025.01.04(토요일)

 

위치 : 창녕군 영산면 교리

주차 : 주차장 있음. 무료.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조선전기 제11대 중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국가가 설립한 지방교육기관 영산 향교입니다.

 

참고로 향교라 함은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지요.

 

 

향교의 출입문인 풍화문입니다. 안쪽의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습니다.

 

영산향교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4(선조 37) 중건하였고, 1959년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5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7칸의 명륜당, 내삼문(內三門)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五聖), 송조4(宋朝四賢), 우리나라 18(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치도를 보면 대성전은 강학공간에서 위로 제법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건축형태는 경사지에 일축선(一軸線) 전학후묘(前學後廟) 직렬형이고, 대성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전퇴가 없는 폐쇄형 건물이며, 명륜당은 정면 5,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전퇴가 개방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고 합니다.

 

 

 

 

향교 입구에 세워져 있는 영산 향교 빗돌입니다. 2019년도에 정비공사를 했던 모양입니다.

 

 

 

 

풍화문 앞에 서워져 있는 영산 향교 안내판과 배치도입니다. 배치도에서 보듯 명륜당과 대성전이 제법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풍화문 옆 담벼락에서 찍은 명륜당의 모습입니다.

 

명륜당 정면 5,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이 공부하는 강당이고 양 옆에 딸린

방은 스승님이 머무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명륜당 양 옆으로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이는 지금의 기숙사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머무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명륜당 뒷문 내삼문을 통과하면 대성전에 도착할 수 있는데, 잠겨 있어 향교 밖 길을 둘러 대성전에 도착하였습니다.

 

 

 

 

대성전 잎에 서니 주변이 탁 트여 참 좋습니다. 머물고 싶은 충동도 느낍니다.

 

 

 

 

대성전 -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는 볼록거울을 이용해 풍화문 입구에 자리한 충효전통예절관을 담아 봤습니다.

 

 

 

 

충효전통예절관은 문이 잠겨 있습니다. 언제 개방을 하는지, 내부도 궁금하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 수가 없네요.

 

 

 

 

 

《영산 유다리》

 

영산에는 세월에 묻혀 비석만 있는 무지개다리(홍예교)가 있는데, 따로 소개할만한 자료가 부족해 이 장에서 소개합니다.

선비들이 다니는 다리라는 뜻을 가진 바로 유(儒)다리 입니다. 

 

영산면 교리와 성내리 사이를 흐르는 하천 중간지점에 만년교처럼 화강암으로 축조한 조그마한 무지개형 다리인데 이 다리를 ()다리또는 이우다리’, ‘놋다리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축조 시기는 기술적인 면으로 볼 때 영산 석빙고를 축조한 삼국시대(가야?)라고 추측하나 정확히 알 수는 없으며, 만년교보다는 훨씬 앞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다리길이는 2.9m, 2.8m, 높이 2m이다. 또한 유()다리는 구계리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교리와 구계리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하는데, 다리이름은 교리와 성내리 사이로 흐르는 북쪽 향교 옆 계곡의 물이 영산 앞 시내로 합류하며 이 계곡 서쪽의 항교로 통하는 길이며 유인(儒人)들이 다니는 길이므로 유다리 유()자가 붙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옛 유다리의 모습을 발췌한 사진입니다.

 

 

 

 

지금은 하천이 복개되어 유다리가 있는 장소라고 옛날에 있던 표지석을 다리 위치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이 유다리가 있던 곳임을 알리는 하나의 징표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