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1.10.02(토요일)
날씨 : 맑음
위치 : 함안군 산인면 모곡2길 53
고려 선조의 절개와 문화유산이 살아 있는 고려동유적지를 구경하였다.
참고로 고려동유적지라 함은 고려동유적지는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마을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이며, 고려 말 성균관 진사 이오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살아 온 장소다.
고려 말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가 고려가 망하자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하여 담장을 쌓고 살았던 곳이다. 새 왕조가 들어서자 이오는 여러 현인들과 송도의 두문동으로 들어가 산간벽지의 띠[茅]만 우거진 숲속에 백일홍이 만발한 곳을 살 곳으로 정하였다. 이오는 끝까지 고려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은거지 주위에 담을 쌓고, 담 밖은 새 왕조의 땅이라 해도 담 안은 고려 유민의 거주지라는 것을 명시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비석을 세웠다. 이후 이곳에서 고려 유민들이 우물을 파고 논밭을 만드는 등 터전을 일구어 자급자족하였다 하여 고려동(高麗洞) 또는 장내동(牆內洞)이라 불렸다.
이오는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았다. 또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이며,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자손들은 19대 6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살았다. 뿐만 아니라 벼슬보다는 자녀의 훈육에 전념하여 학덕과 절의로 이름 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곳에는 고려동학비(高麗洞壑碑), 고려동담장(高麗洞垣墻), 고려종택(高麗宗宅), 자미단고려전(紫薇壇高麗田) 3,000여 평, 자미정(紫薇亭), 율간정(栗澗亭), 복정(鰒亭) 등이 보존되어 있다.
♥ 고려동유적지에 관한 안내도와 두문동서원 위패 봉안문 안내판이 있는 입구의 모습이다. 주차는 바로 옆 해설사의 집 앞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아래의 우측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 온 것으로 고려종택의 모습이다.
♥ 이오선생과 자미화로 대표되는 배롱나무(나무 백일홍) 군락이 고려종택 앞에 자리하고 있다. 100일 동안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나무인데, 이제는 완전 끝물의 모습이다. 작년 9월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 고려종택 입구의 담벼락을 끼고 이오 선생과 자미화에 관한 안내판이 서있다.
♥ 종택 입구의 모습이다. 안으로 들어 가지는 못하고 밖의 모습만 담았다. 빨간 우체통 같은 게 방문 스탬프를 찍는 곳인데 지금은 출입 명부를 기록하는 것이 들어 있다. 검색을 해보니 안에 복정이라는 우물도 있고, 종가의 사랑채 계모당이 있다고 한다. 고려종택은 이오 선생이 지은 집이란다.
참고로 복정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고 하는데, 내용인 즉 전복회가 먹고 싶다는 시모님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자 우물에서 전복이 나와 그 회를 시모님께 드렸더니 기력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 종택 내부의 사진들은 2018년도에 찍은 것들이다.
♥ 효산정의 옆 모습으로 입구의 문에는 효의문이라 편액되어 있다. 문이 닫혀있는 상태인데, 효산정에 관해 안내문을 읽어 보니 순릉참봉과 성균관 교수를 지낸 효산 이수현의 유적이란다.
♥ 고려동유적지 건너편엔 경로당으로 사용되는 고려동회관이 있다.
♥ 어려운 한자 편액이 붙은 대문을 들어 서니 지금 생활하는 가정 집이라 입구에서 안쪽의 모습만 찍고 돌아 나왔다.
♥ 고려동유적지 울타리 밖의 사당을 들어 가보려니 주인 되는 부부가 앞 텃밭에서 들어가지 말라고 해 대문에서 사진 한장만 찍고 돌아 나왔다. 대문의 편액이 화청문인가보다.
♥ 담장을 두르고 내에서 자급자족을 했다는 고려전의 모습이다. 고려동학 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한다.
♥ 고려동이실원을 광고하는 안내판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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