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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있는 여행

경주 반월성(월성)과 계림의 야경

일시 : 2023.07.30.(일요일)

날씨 : 맑음

 

경주의 월성과 계림의 일부분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경주향교로 자리를 옮겼다. 작년에 여러 유명한 곳 야경을 다 구경하였지만 이곳 두 곳은 직접 가보지를 않아 이곳의 야경과 이곳에서 펼쳐진 고대 신라의 맛을 느껴보기로 하는 것이다.

 

 

 

먼저 월성지구를 둘러보기로 한다. 인왕동 고분군과 마주보고 있는 경주 월성은 언뜻 보면 낮은 언덕처럼 보이는데, 신라 왕궁이 있던 자리로 월성 또는 반월성으로 불리며,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경주향교 입구에 주차를 하고 월성으로 들어 가는데, 큰 고분군 위로 고목이 자라고 있고 조명이 빛을 발해 이색적인 맛을 풍기고 있다.

 

 

 

 

늦은 시간이라 경주석빙고까지는 가지 않고, 성벽에 올라 야경을 구경하기로 한다.

 

 

 

 

아름다운 야경이다. 토성에 올라 경주시내를 구경하고는 지금 보이는 길을 따라 경주계림으로 갈 계획이다.

 

 

 

 

월성(반월성)에 관한 안내문과 포털을 검색해 뽑은 내용을 싣는다.

서기 101년 파사왕 22년에 신라의 왕성으로 축성되어 신라가 망하는 서기 935년까지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려 오늘에 이른다. 월성의 성은 돌과 흙을 섞어 싼 토석축성인데 길이가 1,841m이며, 성내 면적이 193,585제곱미터이다. 동에는 동궁과 월지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첨성대가 있으며 남에는 남천의 시내가 하나의 방위선 역할도 하게 되어 있다. 기록에는 문으로 남문, 귀정문, 북문, 인화문, 현덕문, 무평문, 존례문과 임해문이 있었으며 누각으로 월상루, 망덕루, 명학루, 고루가, 전으로는 조원전, 숭례전, 평의전, 남당, 월정당, 우사록관, 좌사록관, 영각성이 있었으며 궁으로는 내성, 영명궁, 월지궁, 영창궁, 동궁, 내황전 등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월성지하에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부터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기와, 건물초석 등이 깔려 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석탈해왕(昔脫解王)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석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그 후 파사왕(婆娑王) 22(101)에 여기에 성을 쌓고 옮긴 다음부터 역대 왕이 이 월성에 살게 되었다.

 

 

 

 

토성의 성곽을 따라 월성 위에 오르면 경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가장 가까이 보이는 첨성대가 밝은 빛을 발하고 있다.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엄청 많음을 알 수 있다.

 

 

 

 

경주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곳 조명발도 좋은 곳에서 동행한 딸내미들 한 컷한 모습이다.

 

 

 

 

계림으로 가는 길목에서 뒤돌아 본 야경, 참 온화한 느낌을 받는다.

 

 

 

 

월성을 다 벗어나니 그 좋던 조망지가 건물 터였다고 한다.

 

 

 

 

월성과 마찬가지로 경주 계림도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먼저 계림에 관해 알아보기로 한다.

 

계림은 경주시 교동 첨성대(瞻星臺)와 반월성(半月城) 사이에 있는 숲으로, 19631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신라 왕성(王姓)인 김씨의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탄강(誕降) 전설이 있는 숲이다.

 

계림의 총면적은 7,300인데, 물푸레나무·회화나무·단풍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하며,

삼국유사'60(탈해왕 4) 84일 밤에 호공(瓠公)이 반월성 서쪽 마을을 지나가는데, 마을 옆 숲이 황금 궤에서 나오는 광명으로 가득 차고 흰 닭 한 마리가 울고 있어 탈해왕에게 고하였다. 왕이 즉시 이 숲으로 가 궤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있어 알지라 이름하였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계림이라는 명칭은 숲에서 닭이 울었다는 데서 연유되었으며, 후에 국명으로도 쓰였다. 신라의 신성한 숲이라 하여 현재까지 보존되어 오며, 100여 주의 고목과 l803년에 세운 비가 있다.

 

신라인들에게 닭은 어둠을 물리치고 아침을 알리는 동물로 매우 신성한 존재로 여겼으며, 황금상자는 권력을 상징하는데 토템과 금 숭배 사상을 짐작케 한다.

계림 안에 있는 고분은 신라 17대 내물왕(356~402)의 능으로 알려져 있다. 내물왕은 김씨로는 두 번째 왕위에 올랐으며 이후로 김씨에 의해 세습이 유지되었다. 왕의 칭호로 마립간을 썼다고 한다.

 

 

 

 

위에서도 알아봤듯이 아름드리 고목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느티나무 참 노거수이다.

 

 

 

 

조명에 반짝이는 맥문동 너머로 숲을 밝히는 건물이 있어 가본다 바로 계림비각이다.

 

 

 

 

계림비각 - 경주시 교동 계림(鷄林:사적 제19)에 있다. 1803(순조 3)에 세운 6각형 비각으로, 안에는 계림의 내력과 경주김씨(慶州金氏)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탄생설화를 새긴 '경주김알지탄생기록비'가 놓여 있다. 비석은 높은 대석과 비신, 개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의정 남공철(南公轍)이 비문을 짓고, 경주부윤 최헌중(崔獻重)이 글씨를 썼다. 비각 주위에는 토석 담을 두르고 따로 출입문을 달았다.

 

 

 

 

숲에 조성된 보랏빛 맥문동군락지는 대낮의 울창함을 느낄 수는 없지만 노거수와 사적지가 어울려 독특한 느낌을 준다.

 

 

 

 

향가비를 읽어 보지는 못하고 구경만 하고 주차한 곳 경주향교로 향한다. 구석구석 보지못한 월성과 계림의 구경 아쉬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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